루이 16세와 마리앙트와네트의 처형은 단 한표차로 결정되었다!?


파일:Marie Antoinette being taken to her Execution, 1794.jpg

(출처 - 위키백과)



☆ 프랑스의 왕인 루이 16세, 그리고 그보다 더 유명한 왕비인

마리앙트와네트의 처형은  사실 근소한 차이로 결정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사실 이 젊은 왕과 왕비의 처형은 의회에서 투표를 통해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근소한 차이, 그러니까 360 대 361, 다시말해 한표차가

이들의 운명을 결정지은 셈입니다.


파일:Marie Antoinette Young2.jpg

(출처 - 위키백과)




오스트리아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딸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프랑스로 시집을 온

마리 앙트와네트는, 허영과 사치, 무분별한 사고방식으로 상당히 부정적인 평판을 남겼으며,

그중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목걸이 사건이었습니다.

베르사유 궁전에서 재정의 궁핍은 신경쓰지 않은채 흥청망청 연회와 파티를 즐기던 그녀는,

정치에도 간섭했다고 하는데요, 그 결과 개혁을 시도했던 A.튀고르를 추방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그녀는 프랑스 혁명 이후 튈르리 궁에 갇혀서도 철저하게 반혁명적 태도를 취하고

음모를 꾸미기도 했는데요, 스웨덴 귀족 페르센(애인이라는 설이 있습니다)의 도움을 받아

도망을 준비했으나 실패하였고, 오빠인 오스트리아 황제 레오폴트 2세의 도움을 얻어

혁명을 타도할 계획도 세웠으나 결국 모두 다 실패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녀는 1972년 8월 10일, 탕플탑에 투옥,

차후 루이 16세와 함께 단 한표의 근소한 차이로 인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그녀와 관련된 이야기는 참 많습니다.

그리고 그런 까닭에 많은 이야기에 등장하고, 또 다양한 평가를 확인할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녀가 철없는 행동도 많이 했지만,

그만큼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부를 지키기 위해 정치적인 간섭도 해왔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궁궐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치력 역시 무시할수 없겠죠^^)


어릴적 생각했던 그녀에 대한 이미지가,

어쩌면 잘못된 것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